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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1 

 내가 살던 동네는 70년대에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많은 아파트들 사이로 초등학교와 상가가 있었고, 사이사이에는 10층 높이 가까이 되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정원들이 있는데 요즘 만들어진 아파트 안의 인공적인 정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장마가 지난 뒤의 아파트 단지는 풀과 흙냄새로 가득했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매미 울음 소리는 귀를 뚫고 지나가곤 했다. 소리에 파묻힌 채 아파트 뒤쪽으로 부지런히 간다. 그곳에는 작은 야산이 있었다. 바깥의 차도와 단지를 분리하는 방음벽과 붙어서 경계를 지어주는 역할을 하는 장소인데,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들과 잡초들로 뒤엉켜 아무렇게나 방치된 상태로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특히 장마가 지난 뒤의 야산에는 키 만한 풀들이 자라있었고 넝쿨이 더 무성히 꿈틀 댔다. 벽을 타고 공격적으로 밖을 향해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러 종류의 풀들이 나의 허벅지를 간지럽게 스친다. 무당벌레, 방아깨비, 매미유충, 메뚜기, 사마귀, 비가 온 뒤에 야산에 넘쳐나는 곤충들을 플라스틱 병에 담아내기 바쁘다.

 2

오는 길에 어느 남자아이들은 매미들을 잡아서 플라스틱 대야 한곳에 담아 넣고 있었다. 못 날도록 날개가 뜯어져 있었고 매미의 안에는 노란 액체가 나와서 뭉개지기도 하고 조금 숨이 붙은 녀석들은 끼긱 끼긱 소리를 냈다. 플라스틱 옆에 떨어져 숨이 붙은 상태로 한자리만 빙글빙글 도는 녀석도 있었다. 시큼한 단내가 주변을 감쌌다. 그것을 열대야가 지나 밤이 선선해질 시기, 길 위에 살마들의 밞에 짓밟힌 매미들의 잔여물의 향이다. 향이 전해주는 시큰하고 익숙햔 향의 신호. 여름이 끝나간다. 그러나 여름이 끝나려면 멀었기 때문에 아직은 내게 조금 이른 향이다. (2018) 

 


작업노트

 조선초상화 진신화상첩에 나오는 곰보를 가진 인물들과 17세기 일본의학서적의 삽화의 천연두자국을 보며 삶과 소멸. 그 과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과거에 실체가 없는 전염병이 때로는 마마라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통과의례로 여겨지기도 했었다는 부분 또한 내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몸의 힘과 물질들은 살아있는 동안 이곳에서 저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만든다. 머리카락과 손톱은 날마다 자랄 것이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저항하기 위해 몸에서 열이 날것이다. 고열로 인해서 피부에 열꽃이 필 것이다. 몸은 거슬리는 것들을 고름으로 만들어 내보낼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이러한 증상들을 드러내는 신체의 작용과 다르지 않다.
         
     나는 많은 부분들을 감각하는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 손은 많은 것을 흐트리기도 모아놓기도 한다. 손의 판단은 즉각적이기 때문에 신체의 반응을 에너지로 분산시키기는 최소한의 그림도구다. 가해지는 손바닥의 힘이 종이라는 지지체에 전해져 깨트리고 고스란히 에너지의 흔적으로 남는다. 작업 과정에서 나의 손은 그렇게 종이를 만난다. 가끔은 내가 막싸움 속 주먹질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주는 힘은 강도와 호흡에 따라서 종이 표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목탄이나 건식재료로 그리는 과정에서 찢어지기도 하며 종이의 층을 긁어내기도 한다. 결국 목탄가루의 먼지를 뒤집어 쓴 손과 얼굴만 남아있게 된다. 지저분해진 나와 손가락이 그림을 그린다. 이제 손이 맞닿은 곳은 땀과 기름으로 표시된다. 손이 목탄과 종이에 비비는 소리는 찢어지고 뚫리는 소리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 2018년)









 

 산갈치를 들고 있는 건장한 청년들이 찍힌 사진을 보았다. 산갈치는 여기가 어디인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쓰나미나 지진이 오면 나타난다는 산갈치. 심해 아주 깊숙하게 살고 있다는데,  용은 길을 잃은 모양이다. (2016)

뱀술 

뱀술이라고 알아?

요즘에 난 매일 뱀술이야기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닌다.
우연히 얼마전에 뱀술의 저주에 대해서 한 미스테리게시판에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대강 이렇다.
한 청년이 어르신이 고맙다고 건내준 뱀술 한잔을 먹은 뒤 부터 자꾸 악몽을 꾼다고 한다.

그 악몽에서 청년은 안개속을 계속 헤맨다나…
그래서 한 커뮤니티에 자신의 경험을 올리자 많은 네티즌들이 뱀은 영물이라서
함부로 죽이면 화를 입는다는 얘기부터 생물학적으로
파충류에는 기생충이 많은데 오래 산 커다란 구렁이 같은 경우에는 분명
더 많은 기생충들이 있었으며 그 기생충이 청년의 뇌로 갔을 거라는 추측의 글들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뱀술을 먹고 악몽에 시달리자 무당을 찾아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소박을 맞고 뱀을 먹은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다 라고 내쫓았다나.

그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뱀술을 담구는 법을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살아 있는 상태의 뱀을 그대로 담금주에 넣어서 뚜껑을 닫는다고 한다.

실제로 한 뉴스에는 3년 지난 뱀술을 열자 그 안의 뱀이 튀어나와 공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긴 뱀은 동면상태로도 오래 살 수 있으니까.그럴수있을거야.

-에이, 뱀의 머리를 위를 향해 묶어놓고 잊은 뒤 뚜껑을 열다가 혼자 자빠진걸걸?

그치만 뱀은 한번 먹은 음식을 소화하기까지 몇달이 걸리기도 하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검색 이미지 중에
술병에 들어가있는 뱀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까만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뱀 술을 먹은 사람 중에는 못걸어다닌 사람이 갑자기 허리가 꼿꼿하게 걸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으나 독한 뱀술로 인해 치아가 다 빠졌다는 얘기.

결국 그 술을 먹으면 아픈 몸은 낫지만 임종할때가 되면 술 병안의 뱀처럼 헐떡거리며 쉽게 숨을 못 끊는다고 한다. 헐떡헐떡 헐떡… 쉬익.  (2021)